취향 저격? 취향 철벽?
보드게임 커뮤니티에 이따금씩 올라오는 주제 중 하나가 "취향"입니다.
"내 취향이 어떠네", "어떤 게임은 내 취향이 아니었네" 등등요.
일반적으로 어떤 사회가 발전을 하면 다각화의 방향으로 가게 되어 있으니
보드게임 취미에서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수요가 먼저든 공급이 먼저든, 어쨌거나 점점 더 다양한 게임들이 나오고 있는 것은 사실이죠.
자꾸 먹다 보면 입맛이 예민해지고 발달해서 더 세밀한 차이까지 구별하 듯이,
보드게임도 될 수 있으면 조금 더 내 취향에 맞는 것을 찾고 싶은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제 불순한 (?) 머리 속 한 곳에서 이런 질문이 나옵니다.
"혹시라도... 혹시라도 어떤 게임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 하고 평가를 내렸으면 어쩌지...?"
라고요.
보드게임이란 게 너무나 빠르게 발전하고 있어서
보드게임에 대해, 비보드게이머들이 갖는 이미지와 우리가 갖는 이미지 사이에 간극이 어마어마하게 크 듯이,
때때로 우리도 어떤 게임에 대한 첫인상과 나중의 인상 사이에서도 큰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얼마나 많이 이해하고 있는가에 따라 (어느 정도 깊이가 있는 게임이라면) 게임의 인상은 달라지게 되어 있고요.
또한 누가 설명을 해줬는지, 누구와 했는지, 또 그때 내 컨디션이 어땠는지에 따라서도
게임의 인상은 달라집니다!
그러니까
"응, 한 번 해봤는데 별로더라. 내 취향 아니야."
라고 철벽을 치면 때에 따라서 정말 괜찮은 게임을 놓칠 수도 있다는 얘기죠.
이걸 뒷받침 (?) 할 수 있는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예전에 제가 꼬꼬마 시절 얘긴데요. (지금도 꼬꼬만데;;;)
보드게임 관련 알바를 하던 때에 A 회사를 통해 들은 얘기입니다.
보드게이머가 아니더라도 루XX브는 아실 겁니다.
그 루XX브 퍼블리셔가 우리나라에서 현재 그 게임을 유통하는 B 회사로 찾아왔다고 합니다. 꽤 예전 일이겠죠?
한 게임을 해봤는데 B 회사 사람들 반응이 별로였답니다.
그러자 그 퍼블리셔 사람이 딱 세 번만 하고 평가를 해달라고 얘기했다고 합니다.
어떤 결과가 나왔는지는 다들 예상하시겠죠?
제 경우를 말씀 드리면, 아그리콜라 아시죠?
저 첫 게임 할 때에 (5인플이었고 일꾼 놓기는 거의 처음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10점도 못 넘었습니다.
밥 먹이는 게 답답하고 별로 재미도 없었어요. ^^;;
그래서 주변 분들은 재미있다고 해도 저는 안 했습니다.
1년 정도 지나서 주변 사람들이 하자고 해서 다시 해봤는데 그때에도 비슷했습니다.
아마 한글판 나오고 나서 주변에 이 게임을 가진 사람들이 많아지자
저도 분위기 타서 같이 하면서 조금씩 재미를 찾았던 것 같습니다.
제가 아그리콜라를 잘 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어느 부분이 재미있고 사람들이 이걸 왜 좋아하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인터넷 상으로 "취향입니다. 존중해주시죠?"라는 짤을 종종 볼 수 있습니다.
다수가 소수를 깔고 뭉갤 때에 소수 측에서 이런 걸 쓸 수도 있지만
때에 따라서 자기가 쳐놓은 벽을 깨기 싫을 때에 방어수단으로서도 쓰는 것 같습니다.
자기를 지키는, 합리화하는 말이지만,
또 어떻게 보면 서로 소통을 끊는 말이기도 합니다. ("너랑 말 섞기 싫어.")
다수가 항상 옳은 것도 아니고,
자기 자신이 이른바 "평균"이나 "일반"에서 거리가 떨어져 있는 취향을 가졌을 수도 있습니다. (취향은 언제나 존중합니다.)
그러나 새로운 것, 낯선 것, 어려운 것, 복잡한 것, 특이한 것을 접할 때에
자기에게 자기 자신이 이해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를 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에 대한 최종 판단을 내리기 전에요.
위에서 루XX브의 경우에 세 번이라고 했는데, 그게 반드시 세 번일 필요는 없습니다.
어쨌거나 좀 더 여유를 갖고, 마음을 열고, 눈과 귀를 열고 받아들였으면 좋겠네요.
"너는 어떤 점이 좋았어?", "어떤 게 별로였어?"
서로 묻고 답하면서 다른 시각에서도 접근하면
자신이 이해를 하는 데에 도움이 될 수도 있습니다.
내 철벽 너머에 덩그러니 남긴 게임이
나의 인생 게임일 수도 있거든요. ^^;
지난 모임에 참석자가 적었습니다.
요새 번역 작업에 몰두하느라 시간 가는 것도 몰라서 지난 주말이 올해의 마지막 연휴라는 것도 잊고 있었습니다. ㅠ
(어떤지 사람들이 없더라...)
오후 3시에 검은고양이 카페에 도착하자 Frozenvein 님이 계셨습니다.
둘이서 할 게임이... 할 게임이...
1. 도미니언 Dominion
그렇다면? 도미니언!
제가 고른 게 아니라 Frozenvein 님이 고르셨다는 거.
지난 주에 마녀한테 크게 당하시고 죽음에서 돌아오신 듯. (역시 사이어인은 죽었다가 살아나야 강해지는...)
Frozenvein 님이 플레이하시는 속도가 꽤 빨라지셔서
물천사 님이 오실 때까지 무려 3게임이나 했습니다.
첫 경기에는 예배당이 있었던 것 같고요.
아직 Frozenvein 님이 예배당을 일찍 사는 것에 대한 이점을 잘 모르셔서
이번에도 중반으로 넘어갈 때 즈음에 구입하셨던 걸로 기억합니다.
오프닝 때에 예배당을 구입하면 세 사이클 정도 돌린 후에 덱이 최적화되어 버리죠.
제가 은화 2장도 폐기하는 걸 보고 놀라신 듯.
여유가 있다면 이정도로 덱 효율을 극단적으로 끌어올릴 수 있습니다.
나머지는 금화니까요. ^^
두 번째에는 마녀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 다음에 Frozenvein 님이 정원 쓰는 걸 알고 싶다고 하셔서
세 번째 경기에는 정원을 쓰기 좋도록 왕국 카드를 세팅하고 시작했습니다.
예전에 마이 리틀 도미니언 연재의 정원 편에서 썼던 것 같은데요.
일정 기간 동안 덱을 안 망가뜨리고 정원을 쓸어담으려면
덱에 카드가 가장 많을 때에, 즉 셔플이 일어난 직후부터 정원을 가져와야 합니다.
저는 그 시점을 계산해서 한 턴에 정원을 2, 3장씩 가져올 수 있도록
일종의 시한폭탄 타이머를 설정해 놓습니다.
그래서 그때가 되면 갑자기 몇 턴 동안에 정원을 6장 가까이 쓸어 담습니다.
상대가 이걸 파악하고 따라하면 정원을 4 : 4로 나눠가져서 (공작령을 사는) 운영 싸움을 해야 하고,
그렇지 않으면 정원 개수 차이 때문에 판세를 가져오게 됩니다.
제가 정원을 6장 정도 가지고 있었고,
시장의 남는 구입으로 동화를 찍고,
작업장으로 중반부터 가져온 관료로 은화를 덱에 엎으면서 상대 핸드 견제
이런 식으로 50장 이상의 덱을 금새 만듭니다.
이정도 되면 상대가 속주를 정말 빠르게 사서 끝내지 않는 한, 이길 수 없게 되죠.
저는 속주를 안 살 거니까요. ^^;;
제가 기본판 삼대장으로 꼽는 예배당, 정원을 알려드렸는데,
다음에는 덱을 완전히 새롭게 구성하고 운영할 수 있는 알현실을 가르쳐 드리면 될 것 같습니다.
2. 상트 페테르부르크 (2판) Saint Petersburg (Second Edtion)
바로 새 게임 들어가기 좀 그래서 제가 항상 하는 그 게임 (?)을 권했습니다.
알고 보니 Frozenvein 님은 아직 모르시더군요. (거의 교양필수 게임인데...)
러시아 짜르국 시절 얘기를 시작으로 상트 페테르부르크를 설명해 드렸습니다. (옛날 옛날에 표토르가 살고 있었어요~)
처음 하시는 Frozenvein 님께 어드벤티지를 드렸습니다.
무작위 2장을 고르게 했는데, 하필이면 장인과 귀족...
저는 건물, 그렇다면 물천사 님은... 따... 따봉?
물천사 님이 좋아합니다?
플레이 순서는 Frozenvein - 물천사 - 저였습니다.
첫 라운드의 장인 단계에서 물천사 님이 무려 3원을 절약하고 시작했습니다.
건물 단계에서 천문대가 나와서 제가 바로 구입.
그 단계에서 천문대 효과를 써서 장인 더미를 봤는데,
오오옷! 3루블짜리 럼버짹 (나무꾼)?!
하지만 안 좋은 걸 드로우한 것처럼 메소드 연기... 내면 연기... (후훗)
그런데 귀족 단계에서 큰 언니 (?)가 나왔는데 Frozenvein 님이 바로 구입하시면서 (돈이 있었어??)
1등이 정해진 게 아닌가 싶었습니다.
그래도 게임은 재미있게 흘러갔습니다.
로이 님의 영이 깃든 물천사 님이 건물 러시를 감행.
그런데 본의 아니게 물천사 님이 모으는 건물을 (트레이딩 건물을 내리려고) Frozenvein 님이 한두 개씩 끊으셔서
물천사 님이 힘들어 하셨습니다.
저는 어쩌다 보니 천문대가 2장이나 됐는데,
하나는 쓰고 하나는 1점으로 먹는 용도가 되어서 좀 낭비했습니다.
그 중 하나를 트레이딩 건물로 바꿀까 고민을 계속 했는데
망설이다가 정신 차려보니 이미 품절... ㅠㅠ
큰 언니의 가호로 트레이딩 건물도 내리시고 장인도 밀리지 않는 Frozenvein 님은 깡패였습니다.
물천사 님과 제가 귀족 종류 보너스로 역전을 시도하려 했으나
마치 누가 탄이라도 짜온 듯이 Frozenvein 님에게 맞게 카드가 나왔습니다. ㅠㅠ
마지막 라운드에 Frozenvein 님이 술집 2장을 풀로 써서 20루블을 10점으로 바꾸시고... ㅎㄷㄷ
저는 천문대 빨로 귀족 10종을 모으는 데에 성공했으나
5루블이 부족해서 손에 남은 귀족 1장을 내리지 못했습니다.
최종 스코어는 Frozenvein 님에게 4점 뒤쳐져 2등... ㅠㅠ (5루블!!!!)
3. 다섯 부족 Five Tribes
그 다음으로, 제가 요청한 다섯 부족입니다.
오부족이라고 하는데, 저는 왠지 다섯 부족이라고 읽어야 뜻이 더 명확하지 않나 싶네요. (이것도 취향 차이인가요? ㅋ)
아무튼 아라비아의 여러 미플을 써서 점수를 모으는 게임인데, 베이스가 만칼라입니다.
만칼라를 사용한 게임들 중에 유명한 게 Trajan 트라야누스도 있죠.
이 게임은 득점 루트가 많은 편이어서 어떤 것에 집중해야 할지 감이 오지 않았습니다.
언제나 그렇듯이 저는 처음 몇 번은 특이하게 합니다. ㅋ
이번에는 낙타를 안 놓고 하는 쪽으로.
두 분이 열심히 낙타를 놓고 야자수 심으실 때에
저는 첫 라운드에 가져온 (고관과 원로 들을 지켜주는) 지니 덕분에
흰색과 노란색 미플들을 모으면서 자원 카드를 좀 모았습니다.
죽지 않으니까 마음이 편하더군요.
그 지니 카드가 주는 점수도 나쁘지 않고요.
파란색 건축가로 원기옥 모아서 점수도 먹고. (힘이 부족하다! 고행수행자들아, 나에게 힘을 줘!! ㅠㅠ)
두 분도 건축가로 점수를 몇 번씩 드셨던 것 같았습니다.
게임이 진행될수록 다섯 부족은 장고를 꼭 해야 하는 게임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초반에 너무 대충대충 했던 것 같아요.
신의 한 수를 찾는 소소한 재미가 있네요.
그런데 생각보다 게임이 짧았습니다.
아마도 저희가 장고를 안 해서 그랬던 것 같습니다.
제가 마지막 직전 라운드에서 암살자로 (+ 지니 카드 효과로) 한 플레이어의 고관을 2개 죽일 수 있었는데,
제가 고민고민 하다가 Frozenvein 님을 선택했습니다.
결과를 보니 물천사 님에게 약간 뒤진 2등... ㅠ
암살자 대상으로 물천사 님을 찍었으면 이긴 거였는데... ㅠㅠㅠㅠ
킹 메이킹을 했습니다.
가지고 있는 돈만 비공개여서 요게 변수네요.
4. 몰타의 관문 Die Portale von Molthar
물천사 님 덕분에 알게 되었고 지금도 좋아하는 몰타의 관문입니다.
한글판이 나오기 전에는 스플렌더 팬들에게
"그림이 구리다.", "칩이 안 들어 있다."면서 까였지만
그래도 휴대성 좋고 다양성도 있어서 좋은 평을 듣고 있죠?
몰타의 관문은 저희 모임에서 무척이나 많이 한 게임들 중 하나입니다.
멤버들 다 좋아하는 것 같아요.
이날에는 제가 홀수 골렘을 빠르게 활성화했고 점수 적당한 것들을 집어가서 빠르게 점수를 쌓았습니다.
물천사 님은 언제나 그렇 듯이 드워프 사랑...
Frozenvein 님이 점수 높은 것들 몇 장을 활성화하셔서 먼저 종료 조건을 달성하셨습니다.
제가 시작 플레이어여서 최종 라운드 돌 때에 13점까지 올려놓으면서
Frozenvein 님이 집어갈 진주 카드가 없어지도록 한 번 갈아드리고... ㅋ
하지만 물천사 님도 마지막 턴에 13점을 달성하셔서 공동 승리했습니다.
5. 발레리아: 카드 왕국들 Valeria: Card Kingdoms
물천사 님이 가져오신 신작을 해봤습니다.
미니 빌하고 비슷하다고 하셨는데,
설명을 듣고 나니 도미니 빌인데 (도미니언 + 미니 빌)? ㅋㅋ
그렇다고 덱 빌딩 게임은 아니고요.
베이스는 완전히 미니 빌인데, 테마라든지 게임 종료 조건이라든 이런 게 도미니언 느낌이 살짝 납니다.
미니 빌을 도미니언 물에 잠깐 담갔다가 뺀 느낌. ㅋㅋ
물천사 님은 미니 빌에서처럼 특정 숫자에 몰빵을 하시면서 점차 숫자를 넓히셨고요.
저는 주사위 굴리는 걸 찬찬히 보니 낮은 숫자 몇 개가 꼭 필요할 것 같아서
낮은 숫자들을 하나씩 가져오고 나서 큰 숫자로 넓혔습니다.
제 기억으로는 "4" 카드 1장 빼고 하나씩 다 모았던 것 같네요.
돈은 Frozenvein 님이 엄청나게 모으셨고,
저는 "1" 클레릭 덕분에 마나가 꾸준히 들어왔습니다.
두 분이 몬스터 사냥에서 경쟁하실 때에 저는 그냥 땅 사고... (여기서도 도미니언 플레이를...;;;)
그러다가 두 분이 남겨놓은 오르크 족장을 제가 지나가다가 막타 쳐서 먹고... ^^;;;
후반으로 가니까 돈과 마나가 많아서 도메인을 5장까지 샀습니다.
마지막에 공작 카드를 공개했는데,
제 것은 도메인마다 3점씩이어서 점수가 높았습니다.
의도치 않았지만 어쩌다 보니 승리...;;;
최근에 발레리아의 확장이 줄줄이 나오는 것 같은데요.
미니 빌 스타일이어서 저는 그다지... 음... 넵... 그렇습니다;;; (구매는 패스...)
6. 도미니언: 인트리그 Dominion: Intrigue
시간이 애매하게 남아서 물천사 님의 추천으로 도미니언: 인트리그를.
Frozenvein 님도 콜!
추천 덱으로 했습니다. 빅토리 땐쑤!
왕국 카드 세트를 보니 퇴출될 아이들 얼굴을 보자 마음이 아팠습니다.
Great Hall 대회당, Scout 정찰병... (밥 잘 챙겨먹고 잘 살아라...)
Masquerade 가면무도회로 덱을 살살 줄이면서 5원일 때에 Upgrade 개선를 갔습니다.
다른 분들도 비슷하게 하셨는데 차이점은 두 분은 Ironworks 철공소로 대회당을 집어갔다는 거죠.
저는 대신에 Harem 하렘을 몇 개 추가하면서 덱의 구매력을 올리고,
정찰병과 Bridge 다리로 큰 그림을 그렸습니다.
나중에 동화가 거의 다 빠지자 Nobles 귀족을 많이 넣었습니다.
정찰병의 효율이 얼마나 올라갈지 예상이 되시죠? ^^;;
물천사 님은 개선으로 개선을 깨서 귀족으로 (한 번에 멋있게?) 올리시려고
초중반에 손에 5원과 개선이 잡히면 개선을 안 쓰시더군요.
개선을 쓰고 덱을 줄이는 게 좀 더 낫다고 봅니다.
게임은 러시로 끝났던 것 같고요.
제가 속주는 하나밖에 없었지만 귀족과 하렘이 많아서 점수가 나쁘지 않았습니다.
29 : 26 : 26으로 아슬아슬하게 이겼던 것 같네요. ㅎ (정찰병아, 안녕~~)
돌아오는 일요일에 뵙겠습니다.
(할로윈 때에 언집배나 실컷 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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