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모 한 장
 
 
내가 페스타에서 본 일이다.
늙은 게이머 하나가 오전 10시에 떨리는 손으로 볼펜을 잡으면서,
"황송하지만 이 이벤트에 참가 못하는 것이 아닌지 좀 보아 주십시오."
하고 그는 마치 선고를 기다리는 죄인과 같이 코X게 직원의 입을 쳐다본다.
코X게 직원은 게이머를 물끄러미 내려다보다가, 참가용지를 보고
"좋소."
하고 말한다.
그는 '좋소'라는 말에 기쁜 얼굴로 참가용지를 받아서 이름을 적고 절을 몇 번이나 하며 간다.
그는 뒤를 자꾸 돌아보며 얼마를 가더니 다시 찾아왔다.
한참 꾸물거리다가 볼펜을 잡으며,
"이것이 정말 프로모 주는 이벤트입니까?"라고 묻는다.
코X게 직원도 호기심 있는 눈으로 바라보더니,
"너 후로 게이머지?"
게이머는 떨리는 목소리로
"아닙니다, 아니에요."
"그러면 7 원더스를 배우러 왔단 말이냐?"
"누가 그런 쉬운 게임을 모릅니까? 룰북 읽어보면 모르나요? 어서 시작해 주십시오."
게이머는 테이블을 두드렸다. 코X게 직원은 웃으면서
"좋소."
하고 이벤트를 시작했다.
 
그는 무작위로 나눠준 에페소스 불가사의 보드를 가슴에 품고 자리에 앉는다.
좌우를 흘끔흘끔 돌아보며 카드를 고르더니 별안간 카드를 플레이한다.
과학 건물이 끊기지 않았나 살펴 보는 것이다.
거친 손가락이 넘어온 카드 더미를 집어올릴 때 그는 다시 웃는다.
그리고 또 다음 카드를 플레이하더니 테이블 앞에 쪼그리고 앉아서 다음 카드 더미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가 어떻게 열중해 있었는지 내가 가까이 선 줄도 모르는 모양이었다.
"누가 과학 건물을 넘겨 줍니까?"
하고 나는 물었다.
그는 내 말소리에 움찍하면서 카드 더미를 가슴에 숨겼다.
그리고는 떨리는 다리로 일어서서 달아나려고 했다.
"염려 마십시오, 탈락시키지 않소."
하고 나는 그를 안심시키려 하였다.
 
한참 머뭇거리다가 그는 나를 쳐다보고 이야기를 하였다.
"저는 후로 게이머가 아닙니다. 아직 300판도 못 해봤습니다. 7 원더스를 여러 번 해주는 분도 백에 한 분이 쉽지 않습니다. 저는 한 겜 한 겜 소중히 플레이했습니다. 이렇게 배운 7 원더스로 자장면 내기를 하면서 실력을 키웠습니다. 이 실력을 키우느라고 6년이 걸렸습니다."
그의 뺨에는 눈물이 흘렀다.
나는
"왜 그렇게까지 애를 써서 실력을 키웠단 말이요? 무얼 하려오?"
하고 물었다.
그는 다시 머뭇거리다가 대답했다.
 
"이 프로모 한 장이 갖고 싶었습니다. ㅠㅠ"
 

 
 

 
 
전날에 보드게임 페스타에 갔다가 모처럼 서울에서 게임을 늦게까지 하고 돌아왔습니다.
이런 저런 일로 늙어서 잠이 잘 오지 않아서 아침 해가 뜨는 걸 보고 잤던 것 같네요.
지각하고 쓴소리 (?)를 들을까봐 시간 맞춰서 네로에 갔습니다.
도착하고 몇 분 지나니까 425 님이 오시더라고요.
 
 
1. 카베르나: 동굴 농부들 Caverna: The Cave Farmers
 
 
둘이서 뭘할까 고민하고 있었는데 425 님이 카베르나를 하자고 하셨습니다.
저는 좋죠.
 
첫 경기에서 목수와 돌 조각가로 매우 쉽게 시작했습니다.
이것들이 각각 나무와 돌을 할인해 주기 때문에 방을 쭉쭉 올리기에 편했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환경 연구소를 놓기 좋은 위치에 타일들을 놓았습니다.
첫 번째 방을 복합 침실로 했기 때문에 가축들을 더 가둘 수 있었습니다.
이걸로 소떼를 모았고 음식 엔진을 갖추었습니다.
가족을 계속 늘렸기 때문에 4주기에 음식 압박이 심했는데요.
다수의 소와 양 덕분에, 착유 연구소와 직조 연구소를 놓고 음식을 가져왔습니다.
음식의 압박이 가장 클 때에 환경 연구소를 짓고 음식 6개를 땡겼네요.
마지막 라운드에 6번째 가족까지 놓으면서 끝냈습니다.
80점대가 나왔던 것 같습니다.
 

 
 
너무 빨리 끝나서 한 게임 더 했습니다.
이번엔 다르게 하고 싶어서 가족수를 적게 유지하고 무언가를 해보려고 했으나
행동 수가 적어지니 몇 번 하지도 못 하고 게임이 끝나 버렸습니다.
 

 
 
쿠웨이트박 님 오시려면 한 시간 가량 더 남아 있어서 한 게임을 더 하기로 했습니다.
카베르나 깔아 놓은 게 아까워서요. ^^;;
 
이번에도 다르게 해보고 싶었으나 하다 보니 저도 모르게 매번 하던 스타일로 했습니다.
음식 압박 줄이려고 도축 동굴을 지었고요.
또 명당자리에 환경 연구소 짓고 음식 6개 당기고.
마지막에 평화 동굴과 기도의 방을 짓고 무장한 가족의 옷을 홀딱 벗겨서 음식으로 바꿨습니다;;;
초반에 먹은 구걸 타일 1개가 있었으나 다른 점수로 잘 막았네요.
 

 
 
게임에 대한 인상
425:
skeil:
 
 
 
 
2. 상트 페테르부르크 (2판) Saint Petersburg (Second Edtion)
 
 
쿠웨이트박 님이 오시고 셋이서 할 게임을 골랐습니다.
제가 티그리스 & 유프라테스를 가져온 줄 알았는데 퍼런 거 손에 잡히는 대로 들고 왔더니 한자 토이토니카더라고요. ㅠㅠ
425 님이 한토토를 안 좋아하시는 걸로 알고 있어서 네로에 있는 상트 페테르부르크를 골랐습니다.
 
순서는 425 님이 장인, 제가 건물+교환, 쿠웨이트박 님이 귀족이었을 겁니다.
첫 라운드 첫 단계는 425 님에게 매우 좋게 나왔습니다.
건물 단계에서 천문대가 딱 나와서 뒤쳐지는 장인을 따라잡기 위해서 바로 건설했죠.
 
세 번째 라운드였던가? 425 님이 건물 시작 플레이어일 때에 천문대가 나와 버렸습니다. ㅠ
425 님을 따라잡아야 하는데 격차가 오히려 벌어질 것 같았죠.
425 님이 세관을 몇 개 건설해 두셔서 점수가 올라가고 있었거든요.
아마도 제가 귀족 구멍을 뚫어야 해서 억지로 (핸드 제한을 1장 늘려주는) 창고를 건설했습니다.
그런데 창고를 건설한 게 정말 잘한 선택이더라고요.
핸드 여유가 1장 늘어서 귀족들을 주워담았습니다.
 
6번째 라운드의 시작 시에 쿠웨이트박 님이 패스를 하셨습니다.
425 님도 패스를 하셨고, 저는 당연히 패스였습니다.
다른 분들의 의도는 모르겠지만 저는 그때부터 돈이 터져나오기 시작해서 가능한 한 시간을 끌어야 했습니다.
건물 단계에서 카드가 전혀 깔리지 않아서 7라운드까지 가게 되었습니다.
 
저도 돈이 좀 있어서 건물을 구입했습니다.
(425 님의 술집 효과 때문에) 건물 단계에서 점수가 약간 뒤쳐졌지만 귀족에 뒷심이 있었습니다.
제가 가진 귀족들은 고위층이어서 점수까지 줬거든요.
중반에 천문대로 뽑은 카드가 하필 이미 구입해 놓은 큰 언니 (번역하면 의식 여장관?)여서
버릴까 말까 고민하다가 나중에 돈이 될 것 같아서 킵 했는데 결과적으로 도움이 되었습니다.
 
제가 7라운드까지 가길 바랬던 또 하나의 이유는 제가 교환 단계의 시작 플레이어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제가 가장 먼저 귀족을 가져가고 쿠웨이트박 님을 거쳐서 425 님이 마지막으로 가져가시게 되는데요.
쿠웨이트박 님도 귀족을 달리고 계셔서 당연히 끊어 주실 거라 믿었습니다.
아무튼 마지막 교환 단계에서 귀족 카드가 단 하나만 나와서 제가 먹고 끝났습니다.
 
제가 귀족을 9종까지 모아서 역전을 하고 점수차를 벌렸습니다.
425 님은 더러운 천문대 카드빨을 탓하시면서 "이제 다시 상트 안 해!"라고...;;;
 
이제 다시, 상트 안 해~♬
 

 
 
게임에 대한 인상
425:
쿠웨이트박:
skeil:
 
 
 
 
3. 촐킨: 마야의 달력 Tzolk'in: The Mayan Calendar
 
 
물천사 님이 오시고 4명.
425 님은 다음에 할 게임을 이미 정해 놓으셨습니다.
바로 전날 서울에서 같이 한 촐킨.
저에겐 전주에서의 "-25점"이라는 살벌한 악몽의 게임이었는데 말이죠.
 
저보다 촐킨을 더 잘 하시는 물천사 님이 설명해 주시길 바랬는데 왜 제가...;;;
제가 이날 할 다른 게임의 룰북을 제대로 읽어오지 않아서 (이것도 쓴소리 각)
30분 정도 시간을 벌어놓고 읽고 있으려고 했거든요.
여러분, 설명도 하면 할수록 늡니다. 여긴 저만의 1인 모임이 아니에요. ㅠ (저도 쓴소리 좀.)
 
물천사 님이 시작 플레이어였습니다.
시작 타일 때문에 일꾼 4개로 시작하셨습니다.
425 님은 바로 전날 Ngel 님이 하셨던 것과 거의 같게 하셨습니다.
저는 하던 대로 자원 추출 기술에 초점을 맞췄는데 하다 보니까 잘 안 되더라고요.
나무 열심히 캐고 옥수수로 바꾸면서 편하게 할 생각이었는데요.
 
425 님은 1시대에 신전 점수를 많이 가져가셨습니다.
저도 빨간 신전에 공동 선두로 점수를 같이 먹긴 했습니다.
 
2시대로 넘어오면서 물천사 님이 치첸 이트사에 일꾼을 두어 개씩 놓으시면서 수정 해골을 달리셨습니다.
없는 살림에 자원을 쥐어짜시면서 기술도 올리셨고요.
해골을 바치면서 신전 트랙도 올리셨습니다.
 
425 님은 신전 점수를 한 번 더 먹는 기념물을 가져가셔서 누가 이길지 모르는 상황이었는데요.
물천사 님이 막판에 수정 해골을 통해 노란 신전에서 쭉쭉 치고 올라가시면서 역전하셨습니다.
 
앞으로 게임 주인이나 가장 잘 하는 분이 설명하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ㅠ
 

 
 
게임에 대한 인상
425:
물천사:
쿠웨이트박:
skeil:
 
 
 
 
4. 타이니 에픽 퀘스트 Tiny Epic Quest
 
 
그 다음으로 물천사 님이 가져오신 작고 귀여운 게임을 했습니다.
어렸을 때 해본 패미컴용 RPG 같이 생겼더라고요. 추억 돋습니다.
각자 용사 파티가 되어서 아이템 얻고 퀘스트도 하고 고블린 때려 잡는 (?) 게임이었습니다.
주사위빨로 모든 게 해결되고요. ㅋ
Press Your Luck의 끝을 봤습니다. ㅎㅎ
그래도 테마가 잘 묻어나서 몰입하면서 재미있게 했습니다.
 

 
 
게임에 대한 인상
425:
물천사:
쿠웨이트박:
skeil:
 
 
 
 
5. 5번가 Fifth Avenue
 
 
그리고 결국 9월은 오고야 말았습니다.
알레아의 9번들은 모두 영~ 좋지 못합니다.
지난 달 매머드 헌터즈에 이어서 좋지 못한 빅박스 게임, 5번가!
 
새벽부터 룰북을 읽고 제가 무려 5년 전에 쓴 리뷰를 읽어봐도 도무지 기억나지 않는 게임이었습니다.
당연했습니다.
5년 전에 리뷰 쓰려고 해본 이후에 이날 처음한 거였으니까요;;;
 
이 게임은 좀 기괴합니다.
도중에 경매가 격발되는데 그 전까지 자원 (카드와 건물 마커)를 열심히 모아서 준비합니다
경매는 크니치아 박사님의 팔라초와 좀 비슷합니다.
각자 자신의 색깔을 정해서 내려놓는데 색깔을 정하면 다른 색깔을 못 섞어요.
이 카드로 하는 경매에 모든 게 걸려 있습니다.
내는 색깔은 자신의 건물 마커를 놓을 칸이고, 숫자의 합은 입찰 금액이고,
카드 배경에 있는 건물은 건물 마커를 놓는 최대 개수입니다.
 
이날 틀리게 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닌데요;;;
높은 숫자를 섞을수록 제한이 걸리는 게 맞습니다.
저흰 반대로 했어요. ㅠㅠ
 
그리고 경매를 일으킨 사람이 모든 경매의 시작 플레이어입니다.
저흰 경매를 딴 사람이 다음 경매를 시작했죠. ㅠ
 
그리고 크리티컬한 거. 센트럴 파크 경매에서 다른 플레이어들은 시작 플레이어가 낸 색깔을 따라가야 합니다.
저흰 각자 내고 싶은 걸 냈는데... ㅠ
 
5번가가 6번가를 지나 7번가가 되었습니다.
 

클레멘타인 급이었는데 리얼로 만들어서 죄송...;;;
 
그렇다고 5번가를 에러플 잡고 한 번 더 하자는 건 오번가? (이건 라임!)
 

 
 
게임에 대한 인상
425:
물천사:
쿠웨이트박:
skeil:
 
 
 
 
6. 7 원더스 + 7 원더스: 지도자들 + 7 원더스: 도시들 + 7 원더스: 바벨 + 7 원더스: 원더 팩 7 Wonders + 7 Wonders: Leaders + 7 Wonders: Cities + 7 Wonders: Babel + 7 Wonders: Wonder Pack
 
 
 
시간이 조금 남아서 빨리 끝낼 수 있는 게임을 했습니다.
하루 전날 저 멀리 서울까지 가서 했던 그 게임.
전날엔 기본판만 해서 마음 편했는데 악마의 확장 (바벨)이 들어가니 심장이 쫄깃했습니다.
 
평화롭게 자원 뽑는 알렉산드리아...일 줄 알았으나 옆나라들 뚜까패는 깡패였다능.
 
아무리 생각해도 새 프로모는 쿠웨이트박 님의 플레이 스타일과 너무 잘 맞아요.
 

 
 
게임에 대한 인상
425:
물천사:
쿠웨이트박:
skeil:
 
 
 
 
7. 도미니언 Dominion
 
 
매우 늦은 저녁 식사를 마치고 425 님과 네로로 돌아와서 게임을 더 했습니다.
저는 카베르나나 한 번 더 했으면 했지만 2인 카베르나는 싫으시다면서...;;;
그리고 말씀을 꺼낸 게임은 다름 아닌 도미니언...?
할 줄 아시는 거 아니었나?!
할 줄 모른다고 하셨습니다.
 
저는 튜토"리얼" 봇 모드가 되어서 수련을 도와 드렸습니다.
첫 번째 게임 세트로 3번 했네요.
부디 재미있으셨기를...
 
 
게임에 대한 인상
425:
skeil:
 
 
 
 
제가 여태까지 타이레놀 모임 후기를 80여 개 쓴 것 같습니다.
B.B.빅 쪽까지 합치면 90여 개 되겠네요.
지금까지 한 번도 밀린 적 없고, 쓸때마다 즐겁고 행복했는데요.
지금은 조금 버겁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밤잠을 줄여가면서 또 하나의 '취미'로 쓰는 건데
제가 포기하는 그 시간을 어떤 분은 하찮은 걸로 여기시는 것 같아서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
시간은 누구에게나 소중하죠, 남의 시간도 마찬가지고요.
 
 
주말에 뵙겠습니다.
Posted by Mounted Clou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