룰을 설명하는 역할에 대해...
 
 
이번 후기는 무슨 얘기로 시작을 해야 하나 고민이 깊었습니다. (드립력도 떨어져 가고...)
문득 지난 모임에서 멤버들의 모습이 기억나서 적어보고자 합니다.
 
제가 동호회 생활을 꽤 오래 해왔습니다.
아마도 2003년? 2004년? 부터 했던 것 같은데요.
모임이 만들어지고 또 없어지는 것을 여러 번 지켜 보면서
새로운 모임을 만들게 되면 시도해 보고 싶은 게 있었습니다.
그게 뭐냐 하면, 일종의 작은 "학교"를 만드는 거죠.
 

인류는 못 지키더라도 내 머리숱만은 지키고 싶다...
 
 
보드게임의 제1차 붐이 일었던 그 시절에 전국 방방곳곳에 보드게임 모임이 많았습니다.
그리고 모임이 자주 열렸고, 모일 장소도 많았습니다.
모이는 사람들의 수가 많았기 때문에 게임을 배우려는 사람과 가르쳐줄 사람들이 알아서 매칭이 되었습니다.
"지금과 비교해 보면", 당시에 나온 게임들의 수도 많지 않았고 복잡도도 낮았기 때문에
지금에 비하면 게임을 가르치는 부담이 적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공통적으로 많이 하는 게임들이 있어서 몇 가지를 배워놓으면 다른 모임에 가서도 게임을 할 수 있었죠.
 
그러다가 거품이 꺼지고 빙하기를 맞은 지구의 생물들처럼
어떤 모임들은 버텨냈지만 꽤 많은 모임들이 없어졌습니다.
모일 장소가 없어졌으니까요.
 
그리고 몇 년 전부터 다시 보드게임 붐이 이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꾸준히 한글판 게임들이 출판되었고,
보드게임 카페와 모임도 다시 생겨났습니다.
 
그러나 제가 봤을 때 10여 년이 지난 지금, 환경이 많이 바뀌었습니다.
첫째로, 매년 엄청나게 많은 게임들이 쏟아져 나옵니다.
이것은 점점 더 많아지고 있죠.
왜냐하면 그때에는 몇몇 보드게임 디자이너가 전담해서 자신의 게임을 내놓았지만
지금은 그들의 게임을 하고 자란, 더 많은 디자이너들 + 킥스타터를 통해 모금받아 게임을 내놓는 사람들이 있어서죠.
 
둘째로, 예전과 다르게 모임의 규모가 작아졌습니다.
수십 명이 떼로 모이는 모임은 거의 볼 수 없죠.
게임의 양이 많아지고 다각화되자 자기 입맛에 맞는 게임을 선택하는 사람들도 그에 맞춰
작게 작게 모이기 때문에 그런 것 같습니다.
이것은 인터넷 커뮤니티 (a.k.a. 카페)가 아니라 스마트폰 메신저 (카톡이나 라인 등)으로 바뀐 탓도 있고,
세대가 달라져서 예전처럼 대규모로 모이는 것을 하지 않는 사회적 영향 탓도 있다고 봅니다.
 
모임이 작아지면 몇 가지 문제가 발생합니다.
몇 명이 개인적인 일로 빠지게 되면 모임이 폭파될 가능성이 생깁니다.
그리고 신입 멤버가 들어오면 누군가가 일정 기간까지 옆에 붙어서 게임을 설명해줘야 하는데,
경험있는 소수에게 집중된다는 문제도 있죠.
 
제가 주목했던 게, 이 "설명하는 역할"이었습니다. (이거 얘기하려고 한참 돌아왔네요. 휴 =3)
 
 
제가 생각하는 보드게이머에게 필요한 능력 세 가지가 있는데요.
1. 게임을 이해하는 것,
2. 게임을 설명하는 것,
3. 게임을 추천하는 것.
이렇게입니다.
 
게임 이해는 개개인마다 다른데, 어떤 사람은 타고 납니다. ^^;
또 어떤 사람들은 자기 성격이나 적성, 직업 때문에 발달하기도 하고요.
서로 다른 사람이 같은 모임에 왔더라도 어떤 이는 이미 전략 게임을 할 수 있는 자질을 갖춘 상태고,
다른 이는 그 기술을 훈련받아야 하는 상태일 수도 있습니다.
정 안 되면 제가 13회 모임 후기에서 썼던 내용처럼,
귀납적인 방법으로 계속 게임 속 상황에 부딪히면서 하나씩 터득할 수도 있을 겁니다. (링크)
하나의 게임을 여러 번 해보면서 터득해도 되니까요.
 
그런데, 게임 설명 기술은 조~~금 다른 것 같습니다.
이건 시간도 투자해야 하고, 자기 노력도 필요합니다.
게임의 룰, 규칙이란 건 굉장히 논리적이고 체계적입니다.
우리 나라에서 꽤 많은 분들이 "매뉴얼"이라 잘못 부르고 있는 "룰북"을 여러 개 읽다보면 공통적인 "순서"가 있습니다.
배경 -> 구성물 -> 진행 -> 세부 설명 -> 승리 -> 부록/요약
대충 이렇죠?
 
사람이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고 이해할 때에 비슷한 순서로 처리하기 때문에
룰북도 그와 같은 순서로 작성을 한다고 생각합니다.
게임에서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 알려줘야 하고 (배경)
룰북에서 계속 언급하고 참조할 내용물을 소개하고 (구성물)
큰 흐름이 어떻게 되는지 또 몇 번 반복하는지 (진행)
큰 흐름 안에 자잘한 규칙들은 어찌되는지 (세부 설명)
그리고 어떻게 하면 게임이 끝나고 이기는지도 알아야 하겠죠 (승리).
 
룰 설명을 잘 하는 사람들은 이러한 사실을 스스로 터득했거나 누군가에게 배웠을 겁니다.
생각나는 대로 마구 설명해서 순서가 꼬이고 앞뒤로 왔다갔다 하는 사람들은
평소에 룰북을 잘 안 읽을 가능성이 크죠.
 
그러니까 각 모임에서 주로 설명을 도맡아 하시는 분들은
하루 아침에 그러한 능력을 받은 것은 아닐 겁니다.
오~~~~랜 시간을 들여서 계속 계발한 거죠.
 
그렇다고 해서
"당신이 설명을 잘 하니까 당신이 설명하세요."
라고 계속 떠미는 것도 곤란하죠.
룰 설명은 육체적, 정신적 피로 (+ 배고픔)을 가져오니까요.
 
 
제가 서두에서 (지금도 서두인데...;;;)
일종의 보드게임 "학교" 같은 것을 만들고 싶다고 했던 것은
게이머로서, 룰 설명 기술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길러내고 싶었던 것이었습니다.
처음 본 룰북도 목차를 훑어가면서 바로 게임을 시작할 수 있게끔요.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지만, 어쨌거나 모임에서 룰 설명이 가능한 사람들이 한 명만 더 생겨나도
기존에 설명하던 사람들이 느끼는 피로감이 훨씬 더 줄어듭니다. (뭔가 일꾼 놓기 게임 같은데...)
 
그렇다고 어지러운 아그리콜라나 푸에르토 리코 룰을 당장 설명해 내라고 요구하는 게 아닙니다. ^^;
간단한 카드 게임부터 단련시키며 천천히 올라오라는 거죠.
룰 설명이란 것도 계속 하다보면 실력이 늘거든요. ㅎㅎ
 
 
우리 타이레놀 모임은 아마 다른 모임보다 신작에 대해 둔감할 겁니다.
새 게임은 물천사 님이 조금씩 구입하고 계시지만 저는 외려 구작들을 가지고 나갑니다.
모임에 오는 사람들이 게임을 반복적으로 즐기면서 스스로 전략적 사고를 높이고,
룰에 통달해서 새로 오는 사람들에게 소개하거나 설명할 수 있게끔요.
타이레놀 모임 사람들이 룰 설명도 잘 하게 될 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때가 되면 가족이나 친구들과도 본인이 가지고 있는 게임들을 즐길 수 있을 테니까요. (이것이 나의 큰 그림, 타이레놀이 이렇게 무서운 모임입니다.)
 
 

 
 
지난 일요일은 제가 오후 2시가 넘어서 도착해서 몇몇 분들이 이미 게임을 즐기고 계셨습니다.
제가 들은 바로는,
 
 
1. 스플렌더 Splendor
 
 
하루나 님과 하루나친구 님이 로이 님과 3인으로 먼저 하고,
스플렌더 그랑프리에 나가셨던 후로 게이머, 에피아. 님이 오신 후에 4인플로 또 하셨다고 합니다. (제보 감사합니다.)
 
 
 
 
2. 퍼레이드 Parade
 
 
Frozenvein 님이 오신 후에는 Frozenvein 님이 구입하신 게임들 중에 퍼레이드를 5인으로 하셨습니다.
제가 도착했을 때가 시작한지 얼마 안 된 것 같던데.
 
Frozenvein 님이 게임을 2개 구입하셨는데요.
무척 반가운 일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게임을 샀다는 건 룰북을 읽고 설명할 생각이 있단 얘기니까요. (좋은 자세입니다.)
 
게임 결과는 로이 님이 이기셨으니 안 적는 걸로. ㅡㅅ ㅡ;;
 
 
 
3. 버건디의 성들 The Castles of Burgundy
 
 
그리고 테이블을 나눴습니다.
저희 쪽은 로이 님과 에피아. 님 두 분 모두 배우고 싶어하셨던 버건디의 성. (한 번에 두 분한테 알려드리니 편하군요.)
 
에피아. 님의 보드에는 도시 건물 8칸짜리 덩어리 (원기옥??)가 있고 그 주변에 자잘한 칸이 많아서 유리해 보이셨습니다.
초기에 에피아. 님이 자잘한 칸들을 막으면서 앞으로 쭈~~~~~~~~욱 치고 나가셨고,
나머지 둘은 쭈구리. (힝)
 
로이 님은 선박왕이 되어 턴 오더를 앞으로 계속 끌고 가셨네요.
열심히 상품도 선적하시면서요.
 
저는 은광을 빠르게 모았고, 모인 은덩어리로 암시장에서 열심히 추가 구입을 하려고 했는데,
이 暗시장이 癌시장이었는지 뽑기 운이 결국 제게 안 좋게 작용했습니다. (셔플 누가 했죠?)
 
중기에 암시장 타일로 도시 건물이 우르르 나왔다가 다 사용되지 않고 버려졌는데,
나중엔 도시 건물이 안 뽑혀서 제 빌드가 꼬였습니다.
마지막에 도시 건물 채우면서 보너스 먹고 역전하려고 했는데 현실은...
 

 
은덩이는 남는데, 암시장에서 구입할 도시 타일이 없어서 망했으요.
에피아. 님에게 2점 뒤진 2등. ㅠㅠ
 
어쨌든 재미있으셨다니 다행입니다.
 
 
 
 
4. 몰타의 관문 Die Portale von Molthar
 
 
그 시간에 Frozenvein 님이 구입해오신 몰타의 관문을 하루나 프렌즈 두 분께 설명 드렸습니다.
멀리서 들으니 Frozenvein 님이 설명하시면서
"스켈 님이 매주 설명하시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었구나..."
라고 하셨던 것 같은... (살짝 감동 오는데요?)
반면에 저랑 게임 같이했던 어떤 분은 그런 저부터 견제해야 한다고 했었는데 말이죠. (저는 로이 님이라고 얘기하진 않았습니다. 엣헴)
 
스플렌더의 상위호환인 몰타의 관문을 같은 날에 배우는 것도 좋죠.
비슷하니까 룰도 빨리 익힐 수 있고, 비교도 해볼 수 있으니까요.
 
세 분이서 하시고 나중에 친구 님이 오신 후에 네 분이서 한 번 더 하셨을 겁니다.
 
 
 
 
5. 와이어트 어프 Wyatt Earp
 
 
저희 쪽에서 버건디가 덜 끝나서 남은 네 분이 이 게임을.
게임을 배우려고 선택하신 거였겠지만 사실 이 게임은 넷이서 하기에 좋지는 않습니다.
3인 베스트 게임이거든요.
 
버건디가 끝나는 시간에 맞춰서 한 라운드만 하신 것 같은데,
나중에 3인이서, 그리고 숙련자와 함께 하면
생각의 틀을 깨는 플레이를 보실 수 있습니다.
늘어지는 게임이 아니라 정~~~~말 빨리 후다닥 끝나는 게임이에요.
 
 
 
 
6. 미스틱 베일 Mystic Vale
 
 
테이블을 다시 나눴는데요.
저희 쪽을 뺀 나머지 세 분, 물천사 님, 하루나친구 님, Frozenvein 님이 미스틱 베일을 하셨습니다.
 
두 게임 하셨다고 하셨죠?
 
 
 
 
7. 켈티스: 카드 게임 Keltis: Das Kartenspiel
 
 
그거 끝나고 간단하게 이 게임도 두 번 하셨다고 하고요.
 
 
 
 
8. 위저드: 20주년 판 Wizard: Jubiläumsedition
 
 
제가 가져온 차이나타운을 하려고 했는데...
타일을 다 놓고 온 바람에 집에 다녀와야 했습니다. ㅠㅠ
 
그 동안에 네 분이서 위저드를 하셨습니다.
에피아. 님이 설명하셨을 거에요.
 
 
 
 
9. 차이나타운 Chinatown
 
 
집에 가서 타일을 가져오는 동안에 룰북 읽고,
바로 설명하고 시작했습니다.
규칙이 워낙에 쉬워서.
 
초기에 친구 님이 5칸짜리 사업을 너무나 빨리 완성하셔서 왠지 1등이 정해진 것 같았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구멍가게 하고 있는데...;;;)
3라운드, 4라운드 때에 가장 협상이 길었던 것 같네요.
4라운드에서 옆에 작은 흥신소를 운영하는 하루나 님한테 넘겨달라고 했는데... 윽.
칼만 드셨으면 제가
"경찰 아저씨!! 여기 강도에요!!"
라고 소리쳤을 텐데.
 
제 예상 추가수익이 $21,000였는데, 흥신소 1칸짜리 넘겨줄 테니 그 중에 $11,000을 달라고.
너무나 어이가 없어서 왜 하필 $11,000냐고 여쭤보자,
"제가 11이라는 숫자를 좋아해서... ㅎㅎ"
아무튼 $10,000라는 거금을 드리고 인수하긴 했는데, 그 돈이 크긴 큰 돈이었던 것 같습니다.
 
마지막에 돈 계산을 해보니 $89,000을 가지고 함께 공동 2위라고 장담하며 좋아하시던 에피아. 님과 로이 님은
하루나 님에게 밀려 공동 3위였던 것이었습니다.
 

앞으로 퓨전해서 로피아. 라고 불러야 할 듯...
 

아, 경제 대통령 되려고 했는데...
 
 
 
 
10. 7 원더스 + 7 원더스: 지도자들 + 7 원더스: 도시들 + 7 원더스: 카탄 + 7 원더스: 원더 팩 7 Wonders + 7 Wonders: Leaders + 7 Wonders: Cities + 7 Wonders: Catan + 7 Wonders: Wonder Pack
 
 
 
하루나친구 님이 가시고 남은 사람이 6명.
6명이니까 원더스...! (응?)
 
제 기억으로는 하루나 님이 우리 모임에 처음 오셨던 날에 이 조합으로 했던 것 같은데... (고통받으시면서...)
 
이날에 제가 전에 물천사 님께 선물로 드렸던 카탄 아일랜드도 넣었습니다.
원더 팩도 넣었는데, 바로 옆에 계셨던 에피아. 님이 스톤 헨지 걸린 거 (한 번도 못 해본 거라) 제가 받아서 시험해봤습니다.
 
이제는 당연하게 시티 확장은 기본으로 넣고 쉽게 쉽게 하는 타이레놀 사람들. (강하게 키운다...)
 
스톤 헨지 특성상, 갈색 카드를 많이 깔아야 해서 빌드가 정해져 있는 듯 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특히나 대리석 짤리면 눙물이... ㅠ)
잘 풀리는 듯 했으나 에피아. 님이 공격본능을 발동하셔서 제가 호구가 됐네요. (하지만 로이 님을 잡기 위함이라면 찬성입니다. 응?)
 
로이 님이 77점으로 1등이라고 선언되려는 찰나에 제가
그럴리 없어!! 이 결혼은 무효야!!
를 외치며 확인을 해보니 역시나!
같은 건물을, 7점짜리 판테온을 2장 건설하셨더라는!! ㅋㅋ
페널티로 판테온 한 장 버리고 3원 받은 걸로 쳤습니다.
 
그래서 물천사 님이 매드 사이언티스트스럽게 1등. (정의구현?)
저는 남은 돈으로 3위. 헤헤
 

 

 
그런데 집에 와서 원더 팩 룰북을 보니 제가 능력을 잘못 알고 있었더라고요. (내가 한글 룰 번역했던 것 같은데...;;;)
스톤 헨지 B면 두 번째 층 능력이 원더에 박은 카드를 게임 종료 시에 공개하고
양 이웃 플레이어가 가진 그 카드와 같은 색깔의 카드마다 1점씩이더라고요.
점수가 엄청 높은 건 아니겠지만 뭐랄까요?
내 마음대로 색깔을 정할 수 있는 길드 건물 같은 느낌?
 
스톤 헨지는 다음에 다시 해보는 걸로 하고요.
 
그나저나 하루나 님이 두 번째만에 스스로의 힘으로 57점 얻으셨네요. ^^
 
 
 
 
11. 팬데믹 레거시: 시즌 1 Pandemic Legacy: Season 1
 
 
 
팬데믹 레거시: 시즌 1의 내용 스포일을 막기 위해서
 
 
 
 
나와서 엄마의 때찌에 가서 버거를 먹었습니다.
 
 
돌아오는 모임부터 레거시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겠군요.
그럼 일요일에 뵙죠!
Posted by Mounted Cloud